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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떠나는 제2의 수학여행 양동마을 코스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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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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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마을로,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국보, 보물,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는데, 마을의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 묻지 않은 향토성 등 볼거리가 많아 1993년 영국의 찰스황태자도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1075447_image2_1.jpg](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47/1075447_image2_1.jpg)
경주 교촌마을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인 경주최씨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제86-다호인 경주교동법주가 자리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이 곳에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다.
![2032627_image2_1.jpg](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27/2032627_image2_1.jpg)
경주 배동 삼릉
이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제53대 신덕왕(神德王),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61m, 높이 5.8m, 지름 18m이다.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하여 1953년과 1963년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는 깬 돌로 쌓은 횡혈식 돌방[橫穴式石室]으로 밝혀졌다.
경명왕(재위 917∼927,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大耶城)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後唐)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179639_image2_1.jpg](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39/179639_image2_1.jpg)
경명왕(재위 917∼927,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大耶城)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後唐)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경애왕릉
이 능은 신라 제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을 모신 곳이다. 밑 둘레 43m, 지름 12m, 높이
4.2m 규모로 흙을 둥글게 쌓은 형태이다. 남산의 북서쪽 구릉의 끝이자 인천(麟川;기린내)의
동안(東岸)에 위치하고 있다.
왕은 제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포석정에서 잔치(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쳤다.
![680975_image2_1.jpg](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75/680975_image2_1.jpg)
4.2m 규모로 흙을 둥글게 쌓은 형태이다. 남산의 북서쪽 구릉의 끝이자 인천(麟川;기린내)의
동안(東岸)에 위치하고 있다.
왕은 제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포석정에서 잔치(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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