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사천의 역사탐방로 산책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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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01:01
다솔사(경남)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 (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 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화재가 일어나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다행히도 대양루는 소실되지 않았으며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중건 끝에 현존하는 것이 이 건물이다.
사천읍성세종 27년(1445)에 축성된 사천읍성은 정동면 예수리 뒷산의 성황당 산성과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본래 산성이 갖는 입지조건, 즉 주거지의 주위나 산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견고한 성벽을 쌓아 유사시 적에 대한 방어와 백성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평산성이다.
사천 선진리성사천은 삼한시대에 사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그만 나라였다. 이후 사천은 신라 나해왕 때 사물현이 된다. 1995년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사천시로 통합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1592년 5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천만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이용하여 왜선 12척을 쳐부수었고 1598년 정유재란 때에는 조.명연합군과 일본군 간에 치열히 싸운 지역이다. 현재 성내에는 20~100년생 벚나무 1,000여 그루가 있어 만개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사적지이다. 가까이 관광 휴양마을이 조성되어 깨끗이 단장되어 있어 이용에도 매우 편리하다.
사천 대포어촌체험마을전어마을로도 유명한 경남 사천의 대포마을은 시원한 남동풍의 갯바람이 제격이다. 마을 앞바다에는 들물때는 잠겼다가 썰물때 수면위로 나타나는 “한여”라는 큰 여가 있어 마을이름도 “한여”라고 하였다가 근간에 대포라 불리어졌다. 모세의 기적처럼 썰물때는 “한여”와 육지가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여까지 닿을 수 있다. 낙지, 대하, 바지락, 굴, 쏙 등이 생산되며 창선·삼천포대교와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중심에 있고 특히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개통 후 접근성이 뛰어나 외래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사천읍에서 국도3호선을 이용하여 이동하다보면 사천시 용현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남양동 대포마을로 이어진 사천만 해안도로가 펼쳐져 있다.
구계서원구계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세웠으며, 1611년(광해군 3) 사당인 구산사를 세웠다. 1676년(숙종 2)에 ‘구계’라는 현판을 나라에서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723년(경종 3)에는 김덕함(金德諴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1931년에 다시 세웠다.